혼잣말을 자주 하게 되는 시기,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옵니다. 그 말들이 꼭 누군가를 향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저 문득, 나도 모르게 “아 맞다”, “아 왜 이래”, “진짜 피곤하네” 같은 말들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순간들.
이런 혼잣말이 잦아졌을 때 혹시 뇌가 과로하고 있다는 걸 의심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사실 혼잣말은 단순한 습관이나 성격이 아니라 뇌의 언어 회로가 내부 자극을 견디지 못하고 외부로 흘러나오는 하나의 감정 배출 통로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혼잣말이라는 현상을 감정의 문제로만 보기보다 뇌의 과부하, 감각 정보 처리 이상, 자율신경계 피로라는 관점에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뇌가 너무 말을 안 해서, 말이 입밖으로 새어 나오는 순간들
사람은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건 실제 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 우리 뇌는 늘 언어를 생산하고 처리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뇌 속의 말들이 일정한 기준 이상으로 쌓이거나 흐름이 막히게 되면 결국은 입 밖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혼잣말을 자각하지 못한 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중얼거립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오늘 뭐 입지”, 컴퓨터가 느릴 때 “아 왜 이래 진짜”, 일을 하다 말고 “아 이거 또 깜빡했네” 같은 말들을 입에 올리는 건 단순한 말버릇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머릿속 정보들이 외부로 흘러나오며 뇌를 정리하고 있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혼잣말은 언어 중심의 두정엽-측두엽-전두엽 루프가 내부 피드백을 넘어서 외부 자극 없이 작동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즉, 대화 상대가 없어도 뇌가 스스로 말을 해야만 정보 정리가 가능해진다는 뜻이죠. 이는 특히 뇌가 피곤하거나 감정의 내부 정리가 잘 되지 않을 때 자주 나타나는 반응이기도 합니다. 저도 어느 순간부터 집 안에서나 일할 때 혼잣말이 많아졌다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하루가 바쁘고 복잡한 날일수록 오히려 조용한 순간에 말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말들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도, 의미를 남기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말을 해야만 조금 정리되는’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이건 아마도 뇌가 스스로 과부하 상태에 이르렀음을 내게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내적 청각 자극이 감정 피로를 넘을 때, 혼잣말은 시작됩니다
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만 반응한다고 생각하지만 뇌는 사실 스스로 ‘소리 없는 말’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걸 내적 청각이라고 부르며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에서도 뇌는 끊임없이 언어를 만들고 해석하고 삭제하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언어의 흐름이 머릿속에 너무 많아지면 뇌는 일종의 ‘정리’를 시도하게 되는데 그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실제 말로 표현하기’입니다. 혼잣말은 생각이 입 밖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뇌가 스스로 감정적 과부하를 배출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습니다. 특히 내면에 말 못할 감정이 많은 경우 혹은 감정을 조절할 힘이 줄어든 상태일수록 혼잣말은 더 자주, 더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옵니다. 억눌린 분노, 풀리지 않는 불안, 반복되는 걱정 속에서 내면의 언어가 소리로 변할 때 혼잣말은 말이 아니라 감정의 누출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감정은 언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정을 눌러둘수록 언어는 더 크게 말하려 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수록 뇌는 소리를 통해 자신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제 경험상 감정적으로 가장 예민했던 시기에는 혼잣말도 훨씬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말들은 대부분 비난, 핀잔, 위로, 반복 같은 단어들이었죠. 스스로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때 뇌는 결국 스스로를 향해 말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자율신경 피로와 뇌 피질의 자기조절 실패가 말로 흘러나올 때
혼잣말이 늘어나는 현상은 자율신경계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교감신경계는 항진되고 감정을 진정시키는 미주신경은 억제되며 이로 인해 마음은 더 예민해지고 신체는 더 피곤해집니다. 자율신경계가 피로할 때 감정 조절 기능은 약해지고 뇌 피질, 특히 전전두엽의 판단과 억제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가 평소에는 하지 않던 말, 혹은 굳이 소리내지 않아도 되었을 말을 자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특히 감정을 조절하는 뇌 부위와 언어를 생산하는 영역은 매우 가깝게 위치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감정이 흔들릴수록 말이 먼저 나오고 몸이 지칠수록 말로 풀어내려는 본능이 앞서게 됩니다. 어쩌면 혼잣말은 피로한 뇌가 스스로 회복하기 위한 생리적 방어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말을 해야 마음이 가라앉는 분들, 침묵이 불안한 분들,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고 느끼는 시기에는 몸이 보내는 감정 신호를 조금 더 진지하게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혼잣말이 늘었다면, 감정이 멈춘 게 아니라 넘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혼잣말은 감정이 고갈돼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이 너무 많고 그걸 받아줄 내면의 공간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배출 반응입니다. 내가 말이 많아졌다면 그건 마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뜻입니다. 특별한 이상은 아니지만 혼잣말이 늘어나는 시기에는
몸과 마음 모두 조용히 쉬게 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산책을 하면서 말 없이 걸어보고 머릿속이 복잡할 땐 글로 써서 말 대신 정리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감정을 억지로 참기보다는 부드럽게 흘려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뇌는 말을 멈추지 않습니다. 다만, 그 말을 꼭 입 밖으로 꺼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혼잣말은 약함이나 이상이 아니라
뇌와 마음이 자신을 조절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작은 탈출구일 수도 있습니다. 혼잣말이 많아졌다고 스스로를 이상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건 당신이 지금 ‘스스로를 붙잡고 있는 중’이라는 아주 중요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