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외롭다고 느끼는 그 순간, 사실은 우리 몸도 함께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감정적인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뇌와 신경계, 호르몬, 그리고 면역 체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꽤 강력한 생리적 반응입니다. 단순히 기분이 가라앉거나 우울해지는 데 그치지 않고 외로움이 지속되면 몸의 회복력이 떨어지고 잔병치레가 잦아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유난히 감정적으로 고립돼 있다고 느끼던 시기에는 이유 없이 자주 감기에 걸리고 피부가 거칠어지거나 자잘한 통증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외롭다’는 감정을 오랫동안 안고 살던 때였습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던 거죠.
이번 글에서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회복해갈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외로움은 뇌가 '위기'라고 인식하는 감정입니다
사람은 본래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안정감이 있을 때 신체적인 생리 리듬도 안정적으로 돌아갑니다. 반대로, 관계에서 멀어지거나 정서적으로 고립감을 느끼면 뇌는 그 상태를 ‘위험’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외롭다는 감정을 단순히 쓸쓸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는 신호로 인식하는 거죠.
이때 뇌에서는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시스템, 즉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이 활발하게 작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반응의 결과로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됩니다. 코르티솔은 원래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지만 이 호르몬이 계속해서 높은 상태로 유지되면 오히려 면역세포의 작용을 억제하고 우리 몸의 회복력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거나 평소보다 감기에 잘 걸리는 느낌이 들 때 혹시 혼자라는 감정에 오래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분들은 수면의 질도 눈에 띄게 낮아지고 낮 동안의 피로감도 오래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깊은 잠을 못 자던 시기에 유독 입안이 자주 헐고 잇몸이 붓거나 두통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돌아보면 마음이 지친 만큼 몸도 똑같이 반응하고 있었던 거죠.
외로움은 만성 염증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외로움은 단순히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체 내부에 만성 염증 반응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이는 몸이 “어딘가 위험하다”는 뇌의 명령에 따라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염증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이 길어지면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실제로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의 혈액에서는 염증과 관련된 물질들이 높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IL-6나 TNF-α 같은 사이토카인들이 증가하고 이는 전신에 미세한 염증을 퍼뜨리게 됩니다. 한 번 염증 반응이 시작되면 그것을 진정시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피부 트러블이나 소화불량, 두통, 관절통처럼 원인을 알기 어려운 증상들이 계속 반복될 수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실제로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는 노인들의 염증 수치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월등히 높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외로움이 단지 기분만의 문제가 아니라 면역계 전체의 작동 방식에까지 영향을 주는 문제라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이런 상태가 ‘익숙해진’다는 점입니다. 감정적으로 외로움에 익숙해질수록 우리 몸도 그만큼 지속적인 염증 반응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상태는 분명히 몸에 해로운 상태입니다. 가벼운 감정처럼 보이지만 신체적으로는 꽤 무거운 부하가 걸려 있는 상태죠.
외로움은 신경과 면역계를 동시에 자극합니다
우리 몸은 감정에 예민합니다. 특히 외로움처럼 깊은 정서적 고립을 느낄 때 뇌와 신경계는 몸 전체에 경고 신호를 보냅니다. 자율신경계는 이런 감정 상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특히 미주신경은 감정, 내장기능, 면역 기능을 함께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외로움이 지속되면 미주신경의 기능도 점점 떨어지게 되고 그 결과 면역세포의 작동도 불안정해집니다. 암세포를 제거하는 NK세포의 활동이 둔화되고 감염 초기 방어선이 느려지며 작은 병에도 쉽게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거죠.
게다가 외로움은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에도 영향을 줍니다. 이들은 단지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물질이 아니라 면역계에까지 관여하는 중요한 물질입니다. 이들이 부족해지면 감정도 흔들리고 동시에 면역 방어선도 약해집니다.
저는 사람들과 연락을 잘 하지 않던 시기에 이상하게 자꾸 피곤하고 소화가 잘 안 되는 날이 많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그 피로함과 무기력함은 감정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내 몸의 ‘무언의 항의’였던 것 같습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시 연결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다행인 점은 외로움으로 인한 면역 저하는 회복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회복은 생각보다 작은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완벽하게 외로움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몸과 마음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작은 연결의 실마리를 하나씩 다시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연결은 꼭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자연과의 접촉, 반려동물과의 교감, 나 자신과의 대화, 혹은 예술이나 글쓰기처럼 몰입할 수 있는 활동도 충분히 회복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뇌가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다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저는 하루 10분씩이라도 자연 속을 걷고 잠들기 전 간단한 마음 일기를 쓰면서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감기에도 덜 걸리고 이전보다 쉽게 피로하지 않게 되었고 무엇보다 다시 내 몸이 괜찮아지고 있다는 신호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감정입니다. 문제는 그 감정을 그냥 두었을 때 우리 몸이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외로움을 감정의 문제로만 넘기지 마시고 몸이 보내는 신호로 인식해 주세요. 외로움을 인정하고 돌보는 일은 곧 내 몸 전체를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