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은 혈액암의 일종으로 주로 골수와 백혈구에 영향을 미치지만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전신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많은 환자들이 항암치료 이후 경험하는 기억력 저하와 인지 능력 감소는 일상생활에까지 큰 영향을 줍니다. 저 역시 가족 중에 항암 치료를 받은 분이 있어서 치료가 끝났음에도 “자꾸 깜빡한다”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백혈병 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장기 기억 및 단기 기억의 변화, 뇌 활동의 변화, 인지 기능 저하의 메커니즘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항암치료와 단기 기억 저하: ‘화학브레인’의 실체
백혈병 치료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방식은 항암화학요법입니다. 이 치료는 암세포뿐 아니라 빠르게 분열하는 정상세포에도 영향을 주며 뇌세포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이때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가 바로 “화학 브레인” 현상입니다. 치료 중이거나 이후 환자들이 흔히 “생각이 잘 안 나고 집중력이 흐려졌어요”라고 표현하는 바로 그 상태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화학요법을 받은 백혈병 환자 중 약 50~70%는 치료 후 단기 기억이 저하되거나 집중력 감소, 말이 헛도는 증상 등을 호소한다고 합니다. 특히 정보를 짧은 시간 안에 기억하고 활용해야 하는 단기 기억 영역이 민감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제가 본 한 사례에서는 치료 전에는 메모 없이도 일정을 잘 관리하던 분이 치료 후에는 한두 시간 전 약속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 뇌의 기능 변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뇌 영상 연구에서는 치료 후 전두엽과 해마의 활동성이 감소한 것이 관찰되었으며 이는 단기 기억의 저장 및 인출 과정의 장애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항암제는 혈액-뇌 장벽을 통과해 직접 신경세포를 손상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영향은 치료 종료 후 수개월~수년간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인지 재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장기 기억 변화와 해마의 손상
단기 기억이 일시적인 혼란이라면 장기 기억은 보다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백혈병 치료 중 사용되는 방사선 요법 또는 전신 항암제는 해마의 신경세포 재생 능력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해마는 장기 기억 형성과 감정의 연관을 담당하는 중요한 뇌 부위입니다.
장기 기억 저하는 일반적으로 과거의 사건을 명확히 떠올리는 능력이나 학습한 내용을 장기적으로 저장하고 응용하는 능력의 저하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 읽었던 책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거나 잘 아는 사람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등의 사례가 보고됩니다.
기억의 변화는 단순한 신경학적 변화뿐 아니라 심리적 요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요. 백혈병 환자들은 치료 과정에서 우울, 불안, 수면장애, 스트레스를 겪기 쉬운데 이들 역시 장기 기억 형성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인지 기능 재활 훈련, 가상현실 기반 기억 회복 프로그램, 집중 명상 등의 방법이 효과적으로 기억력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어 장기적인 관리가 가능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인지 능력 저하와 일상생활의 변화
기억 저하와 함께 백혈병 환자들이 겪는 또 다른 문제는 전반적인 인지 능력의 저하입니다. 인지 능력은 기억뿐만 아니라 주의력, 언어 이해, 시공간 인식, 계획 및 문제 해결 능력 등을 포함하는데 항암치료는 이 모든 영역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정보처리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이 많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바로 이해하고 대답하던 말이나 행동이 몇 초 늦어지거나 누군가가 말하는 내용을 여러 번 들어야만 이해하게 되는 현상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이러한 인지 능력 저하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직업 복귀, 가족과의 관계, 자존감 등 삶의 질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일부 환자들은 “몸은 나았는데, 뇌가 따라오지 않아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무섭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희망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뇌는 일정 수준의 가소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훈련과 자극을 통해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짧은 독서 후 요약하기, 일상 정보 암기, 퍼즐 게임, 창의 활동, 명상 등과 같은 활동들을 추천한다고 해요.
백혈병 치료 후 나타나는 기억력 저하와 인지 변화는 단순한 부작용을 넘어 환자의 일상과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단기 기억은 빠르게, 장기 기억은 서서히 영향을 받으며 뇌 활동 전반의 변화가 누적됩니다. 하지만 인지 기능은 회복이 가능한 영역이며 꾸준한 훈련과 지지, 적절한 자극을 통해 뇌는 다시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 글을 준비하며, “치료의 끝은 회복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주변에 해당 경험을 한 분이 있다면 기억과 인지는 천천히 회복된다는 사실을 함께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