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라는 소리가 지닌 특별한 힘
살면서 누구나 경험해본 순간이 있습니다. 분명히 조용히 혼자 걷고 있었는데, 아니면 집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는 느낌이 확 밀려와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본 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그 소리를 들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할 때마다 굉장히 묘한 기분을 느낍니다. 단순히 환청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순간의 생생함이 너무나도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귀에만 들린 게 아니라 뇌 속 어딘가가 짧게 울리며 “지금 누군가가 널 불렀다” 하고 알려주는 것 같은 확신이 듭니다.
이름은 단순히 언어적 기호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이름일 것이고 그것은 단순히 나를 지칭하는 소리가 아니라 내 정체성과 동일시되는 소리입니다. 저는 가끔 제 이름이 불렸을 때와 그냥 다른 말이 들렸을 때의 차이를 떠올려봅니다.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면 저는 즉각적으로 그 소리에 반응하는데 그것은 조건 반사와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실제로 소리를 듣지 않았는데도 뇌가 순간적으로 그 조건을 충족시켜 착각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뇌가 이름이라는 자극에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왔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이 현상이 단순히 청각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 본능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뇌의 경계 반응과 불완전한 신호 해석
뇌는 언제나 외부 자극을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정보를 나름대로 보정하면서 현실을 구성합니다. 청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소리를 모두 완벽하게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뇌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자극을 우선적으로 해석합니다. 이름이야말로 그 우선순위 목록의 가장 위에 놓여 있는 자극이지요. 그래서 아주 미세한 소음이나 TV에서 흘러나오는 애매한 음성, 혹은 바람의 흔들림 같은 것도 뇌가 ‘이건 네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잘못 해석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떠올릴 때마다 뇌가 결코 수동적인 장치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뇌는 단순히 소리를 받아들이는 기계가 아니라 늘 추측하고, 불확실성을 줄이고, 가능성을 좁혀 현실을 구성하는 능동적 존재입니다. 이름을 들은 착각도 결국 이 예측 과정의 부산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산물이 때때로 너무 생생해서 실제 경험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제가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는 이런 경험이 더 잦았는데 이는 뇌가 이미 예민해진 상태에서 경계 모드를 강화한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소리에도 과도하게 반응하고 결국 존재하지 않는 이름 소리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저는 ‘내 뇌는 지금 경계 상태구나’ 하고 스스로를 진단하곤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름 착각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내 신경계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보여주는 지표 같은 역할을 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현상을 신경학적으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름이라는 소리는 단순히 청각적 자극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나를 확인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순간 내가 인식되고 있으며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본래 집단 속에서 살아온 존재이고 그 속에서 이름은 단순한 단어를 넘어 관계와 소속감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매개체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 이름 착각이 더 자주 나타난다고 느꼈습니다. 과학적으로 명확히 증명된 사실은 아니지만 제 경험 속에서는 확실히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 마치 뇌가 스스로 고립감을 견디기 어려워 ‘누군가 나를 불렀다’는 착각을 만들어내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허무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부름을 갈망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합니다. 저는 이런 착각을 단순히 웃어넘기지 않고,제 내면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처럼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작은 착각이 던지는 깊은 메시지
결국 아무도 부르지 않았는데도 이름을 들었다고 착각하는 현상은 단순한 뇌의 오류로만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뇌가 늘 경계하며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자 동시에 내가 사회적 존재임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본능의 표현입니다. 저는 이 작은 착각이 단순히 신경계의 실수라기보다는 몸과 마음이 보내는 섬세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웃고 넘기지 않고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일까?”를 스스로 묻습니다. 혹시 긴장이 심한 것은 아닌지, 혹은 누군가와의 연결을 무의식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름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가 워낙 특별하기 때문에 그 착각조차도 우리의 삶에 의미 있는 울림을 남깁니다. 결국 작은 신호 하나에도 내 뇌와 마음이 담긴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저는 늘 경이롭게 느껴집니다.